클레멘트 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6.25 전쟁 때 한국 처녀와 백인 미군 병사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입니다. 그는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온 몸으로 전쟁을 겪었던 클레멘트는 자신이 버려질 때의 일이 놀랍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네 댓살이 되던 1956년 어느 날 어머니는 그에게 외투를 입히고 모자를 씌운 다음 어디론가 한참을 데리고 가더니 어느 길모퉁이에 서서 그를 와락 끌어안으면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앞만 보고 가는 거야. 절대 뒤돌아보면 안 돼.”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한참을 걷다가 나중에 뒤돌아보니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달려들어 외투와 모자 그리고 양말까지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 때부터 거리의 생활을 시작됐습니다. 매일 두들겨 맞고 살기위해 구걸했고 도둑질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튀기! 혼혈아! 튀기는 악마!” 라고 부르고 놀리다가 몸에 불을 붙여 태워 죽이려는 것을 지나가는 행인이 발견하고 살려주기도 했습니다. 감리교 선교사에 의해 어느 보육원에 맡겨졌지만 거기서도 혼혈이라는 이유도 갖은 학대와 차별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목욕물에 아이들이 똥오줌을 싸 놓는가 하면 이불을 빼앗아가고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진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뉴욕의 어느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게 됩니다. 24시간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내렸을 때 그는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공항에 내렸을 때 받은 장난감 지프도, 침대도, 소파도, 음식도 모두 처음이었습니다. 잠을 자다가 밤마다 침대에서 떨어졌고 매일 밤 “불이야” 소리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영리함과 재능으로 대학에 입학하면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퍼듀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여 박사도 되고 1988년에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복강경 수술에 쓰이는 의료기구를 만드는 회사로 48개의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습니다. 성공한 CEO로 1998년에는 한국정부의 초청을 받아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100만 달러의 사재를 털어 자신과 같은 입양아들이 부모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DNA 검사키트를 만들어 데이터 베이스로 저장하는 재단을 만들기도 하고 북한에 의료장비를 기증하고 북한 의사들을 훈련시키고 강의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입양아들을 위한 후원활동과 장학기금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누구보다 힘들게 성공했는데 남에게 나누려면 아깝지 않나요?” 라고 묻자 미국에서의 양어머니가 열어준 첫 생일파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제 생일날 동네 아이들을 다 불러 모아 파티를 열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저에게 선물을 줬습니다. 저는 생일 선물을 그 때 처음 받아 봤습니다. 어리둥절했지요. 금방 빼앗길 것 같았습니다. 어쩔 줄 몰랐지요. 결국 나는 방구석에 쌓인 선물을 지키느라고 파티 내내 그곳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누가 가져가면 어쩌나 하고요. 그렇게 내 생일 파티는 끝이 났습니다.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 선물을 지키느라고 파티를 놓쳐 버렸다는 것을... 그 이후에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 인생이라는 파티에서 내 돈과 재산이 없어질까 걱정하면서 파티를 즐기지 못하고 놓쳐 버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겠다고요.”
지난주에 한국의 어느 신문에 나왔던 클레멘트 씨의 이런 기사를 읽으면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 관원과 오버랩 되었습니다. 부자 청년 관원은 재물을 지키다가 인생의 파티를 놓쳤습니다. 더 나아가 영생의 보화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나누며 섬기며 살 수 있길 바랍니다.
클레멘트 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6.25 전쟁 때 한국 처녀와 백인 미군 병사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입니다. 그는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온 몸으로 전쟁을 겪었던 클레멘트는 자신이 버려질 때의 일이 놀랍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네 댓살이 되던 1956년 어느 날 어머니는 그에게 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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